Trust 人사이트 물리학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다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과학을보다 범준에물리다 통계물리학
‘과학적 사고’는 한 개의 어려운 문제를 여러 개의 쉬운 문제로 전환해서 풀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활자 속 세상에서 벗어나 유튜브의 바다로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저 어렵다고만 생각하기 쉬운 ‘과학’을 쉬운 이야기들로 전환해 전달하는 그들의 활약은 어느 새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그중 유튜브 채널 ‘과학을 보다’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물리학의 언어로 세상의 궁금증을 풀어내고 있는 김범준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과학은 어디서 출발해 어디까지 가고 있을까?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 혹은 명성을 얻으신 분들에게 늘 따라오는 첫 질문 중 하나인데, 어렸을 때 꿈도 과학자이셨나요?

김범준 교수
김범준 교수
기억하기로, 꽤 어린 나이 때부터 과학자가 되겠다고 꿈꿨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쯤에 천문학 쪽에 관심이 생겼었어요. 계기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접하면서예요. 그때 방송됐던 다큐멘터리도 감명 깊게 봤어요. 그걸 보면서 코가 꿰였죠. 당시엔 막연히 천문학 혹은 물리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고등학교에 가서 제대로 물리학을 배우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방향을 물리학으로 정하게 됐어요.

아주 어린 나이에 꽤 어려운 서적을 접하고, 영향을 받아 꿈을 정한 과정이 놀라워요. 중간에 방향이 바뀌지 않고 이어진 것도요.

김범준 교수
당시에 책 내용을 이해했다고 보긴 어려워요. 그냥 그 무드가 좋았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가 굉장히 잘 만들어진 편이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고요. 물론 흥미를 갖는 것과 실제 그 분야를 전공하는 일은 전혀 다른 지점이지만, 저는 운이 좋게도 흥미와 소질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그렇다고 수학을 잘 한 편은 아니에요. 대학에 가기 위해 뒤늦게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연습문제를 풀면서 넘어갈 여유도 없이 개념을 익히느라 진땀을 뺐죠.

물리학과로 진학하신 뒤 대학원에서는 통계물리학을 전공하셨어요. 다소 생소한 단어이기도 한데, 어떤 매력에 빠지셨던 건가요?

개념있는 수학자
전통적인 물리학은 이론과 실험으로 나뉘는데요, 공부하는 과정에서 실험 쪽엔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했어요. 재미도 없었고요.(웃음) 그리고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다보니 눈에 들어온 것이 통계물리학이었는데요. 우리가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사실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기도 어렵잖아요. 그런데 통계물리학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입자들, 이를테면 여기 있는 책상과 의자, 책 같은 것들처럼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것들을 다루기 때문에 일상과도 밀접하고 응용범위도 넓어요. 즉, 교통, 도시, 생태 같은 여러 현상을 물리 시스템에 적용해보는 거예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그 동안 연구한 주제들을 예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구밀도가 시설물의 밀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구가 많으면 학교도 많아야 되는데 인구가 2배면 학교 수도 2배일까 아닐까에 대한 궁금증을 통계청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했던 연구도 있었고요. 사람들의 체질량 지수 측정법이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누는 것인데, 이 계산 방법이 사람의 직립보행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어요. 통계물리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사회현상과 자연현상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패턴이나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에게 과학은 결국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맞는 것 같아요. 한 분야를 진득하게 파고드는 것도 연구자로서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저는 새로운 주제를 끊임없이 발굴해내는 과정을 좋아해요. 주제를 정함에 있어 제가 재미를 느끼고 흥미로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요. 흥미로운 주제를 연구하면서도 그 결과가 학술지에 실릴 수 있는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다행히 제 연구생들과 함께한 과정에서는 그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어요.
저술, 방송, 유튜브 등 소통의 채널을 다변화하신 것도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일까요?
저는 책 읽는 걸 매우 좋아해요. 외부에서 참여하는 독서클럽이 2개 있는데,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무척 즐거워요. 이 과정을 통해 제 관심사와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쓰는 것이나 방송, 강연 등은 제가 생각한 것을 외부와 공유하는 과정인데, 연구라는 것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연구하고, 생각하는 것을 많은 분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단계에서 필연적이었다 보고요. 저는 통계물리학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채널에 참여하는 것 역시 관계를 맺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참여하는데 재미가 있고, 흥미롭기 때문인 것도 맞지만 더불어 과학자로서의 책임감도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요.
김범준 교수

책임감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김범준 교수
일종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데요. 우리 사회가 좀 더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데 기여하고 싶어요. 제 책이 잘 팔리고, 유튜브 조회수가 100만, 200만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물리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많아지진 않을 거예요. 현재 순수과학 전공 지원자가 줄어드는 문제는 좀 더 복잡한 해결 과정이 필요할 거고요. 다만 사회가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전 뉴스에 음이온 침대 사고 기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과학을 알면 쉽게 의심할 수 있는 문제였어요. 전기를 연결하지 않았는데, 음이온이 계속 나온다면 그건 방사성 물질이라는 것이거든요.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속설이고요. 이처럼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는데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죠.

대부분의 과학자분들이 고민하고 있는 과학자가 사라지는 현실에 대해 잠깐 언급해주셨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범준 교수
저희 과학자들을 많이 채용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채용할 때 ‘전공 우대’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과학자들은 ‘전공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호기심으로 출발해 이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서건 누구보다 창의적인 접근이 가능하거든요. 특히 자연과학을 전공한 분들일수록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당연히 좋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많은 순수 과학 전공자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게 우리나라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개념있는 수학자
저는 계획이나 목표가 없어요. 오늘 흥미로운 것을 연구할 뿐이에요. 그 결과들이 모이면 또 책을 쓸 수도 있겠죠. 지금 참여하고 있는 제 개인 유튜브 <범준에 물리다>와 <과학을 보다>도 기회가 닿는 한 계속 하고 싶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고 제 사고를 넓혀갈 수 있는 일이라면 흔쾌히 참여할 마음이 있습니다. 한 가지 정해진 것이 있다면 올해를 끝으로 더 이상 연구생을 받지 않기로 했어요. 연구 성과로 평가되는 시스템에서 좀 떨어져서 제 호기심이 닿는 곳으로 발길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많은 분들과 함께 관계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25
Vol.49
March | Apr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