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 소장
디지털 헬스케어는 헬스케어 산업과 ICT가 융합되어 개인 건강과 질환을 관리하는 산업영역을 말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등장을 통해 의료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등 의료 전반에 걸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정의와 핵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경계를 허물다
의료 기술은 질병을 치료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인 만큼 많은 투자와 연구가 투입되어 빠르게 발전해왔다. 의료 기술의 발전이 기존에는 의학 내부나 전통적인 의학 주변부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지금의 변혁은 의학과는 완전히 별개로 간주하던 시스템, 즉 외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더군다나 의료 혁신이 의료와 우리의 삶에 미칠 파급 효과도 더 근본적이다.
그 변혁의 진원지는 바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다. 전자 의무 기록 (electronic medical record), 유전체 분석 등의 비교적 의료 시스템 내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폰, 클라우드 컴퓨팅, 3D 프린터 등 디지털 기술이 의료 분야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접목되고 있다. 이로 인해 때로는 공상과학 영화 수준의 의료 기술까지도 구현되고도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경계는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으며, 갈수록 이 두 분야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의 대표적이고 최우선적인 활용 분야는 이미 의료 분야이며, 디지털 기술을 빼놓고는 미래의 의료를 설명하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 혁신이 의료 기술과 융합되어 변화되고 새롭게 태동하는 의료 분야를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라고 통칭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의료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무척이나 넓은 범주를 총칭하기 때문에 다소 모호한 개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 분야가 미래에 의료가 가지게 될 모습을 전부 대변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중 상당 부분을 포괄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용어가 생소하다고 해서 이 분야가 추구하는 바도 생소한 것은 아니다. 아니, 반대로 의료가 추구하는 미래의 궁극적인 이상향이 바로 이 디지털 헬스케어의 구현으로 달성될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데이터가 핵심이다
2000년대 중반, 시스템 생물학의 선구자인 리로이 후드(Leroy Hood)는 ‘4P 의학(4P medicine)’을 세상에 처음 소개했다. 이는 4가지 의료 혁신의 목표를 뜻하는 말로, 예측 의료(Predictive Medicine), 맞춤 의료(Personalized Medicine), 예방 의료(Preventive Medicine), 참여 의료(Participatory Medicine)를 의미한다.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하며, 개별 환자에 특화된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단순히 막연한 구호에 그치던 4P 의료는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생기면서 미래 의료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4P 의료가 우리가 언젠가는 당도하려고 하는 목적지라면, 이제 그곳에 이르기 위한 꽤나 구체적인 지도와 이동 수단까지 갖추게 되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그중의 하나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한 가지만 꼽으라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다름 아닌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데이터는 새로운 재화이자, 새로운 권력이며, 새로운 경쟁 우위의 요소가 될 것이다. 재무 분야에서 ‘현금이 왕이다 (Cash is King)’ 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헬스케어의 시대에서는 ‘데이터가 왕이다 (Data is King)’ 라고 감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모두 데이터와 관련이 있다. 예전에는 의미 없이 버려졌던 헬스케어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게끔 하며, 그 데이터의 양과 질 모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된다. 또한 그러한 헬스케어 데이터를 공유·전송·저장할 수 있게 하며, 이를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게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새로운 시대의 헬스케어와 의료를 열어주는 근간이 된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흐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총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필자는 이를 ‘디지털 헬스케어 구현의 3단계’라고 부른다. 먼저 데이터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인 유전정보 분석 기술 등이 사용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단편적인 데이터는 헬스케어 플랫폼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통합되고, 저장됨으로써 해당 사용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통합적인 개인의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는 의사와 병원 등 기존의 시스템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힘도 결국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혁신은 이미 시작되었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유전 정보 분석 기술 등에 따라서 다양한 헬스케어 빅데이터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측정 가능하며, 헬스케어 플랫폼과 클라우드의 발달로 이러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저장 및 통합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기존 의료 시스템 속에서, 혹은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분석되고, 건강관리 및 질병 치료를 위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F 영화에 나올법한 장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실제로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또한 애플, 구글, 아마존, IBM 등의 글로벌 기업과 도전적인 스타트업에 의해서 이러한 혁신은 빠른 속도로 실생활로 다가오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현재 모습보다, 미래 가치에 더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현재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디지털 헬스케어의 모습도 앞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은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등장에 따라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 역시 우리 앞에 주어지고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더 명확한 근거의 도출, 규제의 합리화와 명확화, 개인정보보호,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조율 등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 이슈들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바꿔놓고 있는 헬스케어의 미래.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어떠한 기회를 포착할 것인지 이제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