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사람 4대째 내려오는
정교한 칼날의 기술
한밭대장간 전만배 장인
대장간 대장장이 전통기술 정밀가공
AI와 바둑을 두고, 우주여행을 말하는 시대에도 과거의 명맥을 이으며 전통 가치를 보존하는 이들이 있다.
3대를 이어 대장장이로 살며 아들에게 4대째 가업을 전수하고 있는 칼 만드는 장인 한밭대장간 전만배 씨가 그 주인공이다.
2021년 11월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132회에 출연해 알려졌던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그의 기술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108년 전통 이어온 가업, 56년 자신이 만들어 낸 길

전만배 장인
한 분야의 일을 평생을 거쳐 이어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려 ‘장이’로 살며 세간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속세에서 예의 치켜세워주는 ‘업’이 아님에도 전만배 씨는 56년째 온갖 칼을 만들고 다듬고 벼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장장이로 가업이 이어 내려온 지 100년이 훌쩍 넘었네요. 그 중 절반의 세월은 제가 차지하고 있으니 저에게 대장간은 일터라기보다 삶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칼 한 번 갈아봐라’해서 처음 손에 쥔 이후 정말 쉼 없이 달려왔네요.”
아버지 대장간을 놀이터 삼아 놀던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재능을 발견했고, 그 길로 학업도 중단한 채 묵묵히 가업을 이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작업대에 앉은 전만배 씨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노련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칼을 연마기 표면에 대고 갈다가 육안으로 날의 상태를 감식하고 다시 돌리기를 반복하는 간단한 동작이지만 누구도 쉽게 그처럼 할 수 없다. 그것이 세월의 힘이고, 그만의 노하우다.
전만배 장인
“아침 네 시 반에 출근해서 많게는 18시간을 내리 칼을 다듬은 적도 있어요. 여기 있는 기계도 다 제가 설계해서 만든 것들이에요. 수작업으로, 육안으로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이후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기계화하면서 작업 속도도 올리고, 정교함도 더 갖출 수 있었죠. 이 기계를 누가 가져가 쓴다고 해도 저만큼 사용은 못할 거예요.”
무엇 하나 제 손 거치지 않은 것 없이 대장간을 꾸려, 한 번 거래를 트면 10년이고 20년이고 발길이 이어지게 만드는 기술을 갖췄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어려웠다.
“대놓고 자기 아이에게 ‘엄마 아빠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온갖 서러움에 북받쳐 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는 더 당당히 자신의 기술력으로 돌파해나갔다. 그렇게 자신만의 브랜드 ‘한칼’을 만들고, 세계적인 요리사들이 찾는 칼날의 장인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직 자신이 만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덕분에 얻은 결과라 더욱 뿌듯하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칼의 기술

전만배 장인
무언가를 베고 자르는 데 쓰이는 칼의 생명은 칼날이다. 쓰임에 따라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고, 쓰는 사람의 습관에 따라 칼날의 마모 정도도 달라진다.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에 따라 각도도 달라야 쓰는 사람이 불편함이 없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둔 전만배 씨의 칼의 기술, 정확히는 칼 가는 기술은 세계에서도 자신을 따라올 실력자는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다.
“기계화, 공장화되고 중국 제품이 수입되면서 대장간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게 칼을 갈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거예요. 좋은 칼은 네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해요. 녹이 안 슬고, 잘 썰어져야 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하죠. 저는 이 원칙을 가지고 칼의 생산과 판매와 서비스를 일원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2004년부터 영업하기 시작했어요.”
전만배 장인
한밭대장간은 두 곳이다. 그는 대전에 있는 한밭대장간 공장에서 원천기술을 이용해 칼을 만들어 연마하고 노량진 수산시장 작업장에서는 그것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가공한다. 아들 전종렬 씨가 노량진 작업장을 맡고 있다.
“도축장이나 정육점의 칼은 고기를 자르거나 뼈를 가르고 기름기를 제거하는 칼, 포를 뜨는 칼 등 매우 다양합니다. 일식집의 생선회칼도 회를 뜨고 다지고 자르는 칼이 다르고요. 요리사의 습관이나 일하는 방식에 따라 칼의 모양과 두께, 길이가 제각각이죠. 이렇게 다양한 요구에 딱 맞춰 맞춤형 칼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유명한 셰프나 일식집 요리사가 직접 칼을 들고 찾아와요.”
칼의 모양새와 사용한 흔적을 보면 성격과 습관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의 칼은 이빨이 빠진 경우가 많고, 느긋한 사람은 칼을 너무 오래 사용하여 날이 무디다. 차분한 사람의 칼은 날이 거의 그대로여서 손볼 게 없다. 칼날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알아나갈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고객의 손에 딱 맞게’ 만들어주는 전만배 표 칼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백지수표 앞에서 지켜낸 자존심

전만배 장인
“대장간에 칼을 만드는 데 필요한 3가지가 있어요. 함마, 연마, 대장. 이 3분야 중 하나만 없어도 대장간 3~4군데가 문을 닫아요. 그중 함마장이가 제일 귀한데, 이 모든 공정을 다하는 사람은 더 드물죠. 그런데 요즘은 대장장이가 이 모든 일(공정)을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함마(해머 hammer)’는 쇠붙이를 두드려 연장의 형태를 만드는 일, ‘연마’는 연장을 갈아 쓰기 좋게 만드는 일, ‘대장’은 이런 과정을 모두 총괄하는 분야를 말한다. 전만배 씨는 모든 공정을 다 하는 대장장이다. 그 자부심으로 만든 브랜드가 ‘한칼’이다. ‘한밭대장간의 칼’, ‘한국의 칼’, ‘하나밖에 없는 칼’이란 뜻을 담고 있다.
전만배 장인
“칼을 만들어 파니까 더 섬세하게 고객 맞춤형으로 제작해줄 수 있게 됐죠. 그렇게 입소문이 나니까 해외에서도 손님이 오더라고요. 그 중 한 사람이 방송에서도 얘기했던 18억을 제시한 독일인이에요.”
세계 요리 감정평가사 3인 중 한 명이었다는 그 손님은 처음엔 자기 칼을 가지고 와서 조용히 칼만 갈고 갔다고 한다. 두 세 차례 방문해서 칼을 갈아가더니 어느 날 방송 카메라를 대동하고 노량진 사업장을 찾아왔더란다. 통역을 대동해 전달한 조건은 독일에 와서 1년간 기술을 전수해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백지수표를 주면서 원하는 금액을 적으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에 1.5억씩 계산했어요. 당시 독일 칼 시세를 생각했을 때 제 기술로 사업을 하더라도 1년에 18억 이상의 수익이 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던진 금액이었죠.” 2009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큰 금액은 맞지만 그렇게 팔려갈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기술을 바탕으로 체인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대한민국 대장장이의 기술이니 후배들이 그 길을 닦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 독일인 덕분에 제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죠. 칼은 세계 어디서나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는 건 요리사 등 전문가를 위한 칼갈이 서비스가 어디든 필요하다는 걸 의미해요. 칼갈이와 외국어 실력을 갖춘 후배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면 좋겠어요.”
독일이나 일본, 스웨덴, 프랑스, 미국, 노르웨이 회사들이 세계 시장에 칼을 수출하고 있다. 전만배 씨는 한칼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을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간의 명맥이 끊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국에 남은 대장간 수는 40여 개 정도라고.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힘을 모아보자 해서 대한민국 대장간총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오직 대장간에서만 가능한 일, 그 자부심 하나로 그는 오늘도 대장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2024
Vol.45
July | Aug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