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하나로 운명이 바뀌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답이 있다. 19세기 중반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증기 자동차가 등장했다. 그러나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세운 붉은 깃발법때문에 프랑스, 독일에 자동차 시장의 길을 내주고 말았다. 2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에도 여전히 기술 앞에 규제가 산업 발전에 덫이 되고 있다. 규제가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대에 사는 지금은 어떤 규제가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을까.
“기계들이 우리 노동자들의 일을 대신해버린다. 기계가 많아질수록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생존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니 저 기계들을 부숴버리자! 그래야만 우리 노동자들이 잘 살 수 있다”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했던 정체불명의 지도자 N·러드가 노동자들을 향해 외쳤던 말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발생한 ‘기계파괴운동’으로 영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방적기기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벌인 대규모 사회운동이다. 이는 기술 진보에 저항하는 운동의 시초가 된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의 빛을 보지 못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본 마차 업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며 항변하여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이 '기관차량 조례(Locomotive Act)' 즉 적기조례·적기법(Red Flag Act)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붉은 깃발법은 1861년 차량의 중량을 12t으로 제한하며, 최고 속도 시속 10마일, 시가지에서는 시속 5마일로 제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865년 기관 차량 조례로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 시가지에서는 2마일의 속도 제한을 하며, 한 대의 자동차에 운전사, 기관원, 기수 세 사람의 운전사를 두게 했고, 기수는 낮에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을 마차로 달리면서 자동차를 선도하도록 했다. 1878년 3차 개정법으로 붉은 깃발은 제거 했으나 말을 우연히 만나면 차량은 정지해야 하고,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뿜을 수 없었다.
결국, 세 번의 개정을 거친 1896년에서야 폐지가 되었다. 이처럼 35년간 자동차의 속도와 운송 능력을 마차 시대에 맞추어 규제 하다 보니 같은 시기 프랑스, 독일은 자동차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며 인기를 누리는 반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최초로 시작되었음에도 도태되고 말았다. 시대 발전에 역행하는 제도와 이를 막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은 결과적으로 기술발전을 막을 수 밖에 없다.
뺏느냐 뺏기느냐? 20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수동과 자동의 기술을 뛰어넘어 인공지능 시대로 AI, IoT, 로봇 등 파괴적 기술들을 전 산업, 전 영역으로 확산시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따른 규제 또한 사람과의 싸움이 아닌 기술과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 이어 현재에도 기술의 진보를 방해하는 규제들로 기술 산업은 울고 웃는다.
로봇 기술의 선두를 달리던 일본이 한창 의료 수술 로봇을 개발하고 있을 당시 정부의 로봇 규제 강화로 인해 개발 중이던 로봇을 시제품도 내놓지 못한 채 미국산 다빈치에게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그 당시 미국은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이뤘다. 이후 로봇 산업이 일반 가정, 병원, 분쟁 지대에까지 이르며 확대되자 일본 당국자들이 혁신의 저해 요인이라고 비판하는 각종 규제를 개방하여 로봇 혁명을 이루기 위해 앞장섰다.
최근 일본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분야의 기업들만 현행 30%인 법인세율을 20%로 대폭 낮추겠다고 발표하며, 인공지능(AI)과 로봇 분야에서 규제 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책도 내놓았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5년간 일본 17개 지역을 차례로 국가 전략 특구로 지정해 드론·원격 의료 등 신규 사업을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세계 상업용 드론 시장에서 70%를 차지하는 중국 업체 DJI의 성공도 정부 규제의 유연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은 드론 회사가 스마트폰으로 관련 인가 신청을 하면 짧은 시간 내에 처리가 된다. 특히 DJI가 시장에 나올 당시 정부에서는 그 어떤 규제도 없었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우선 드론을 띄우기 위해 국토교통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드론이 공중촬영을 하기위해서는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절차가 복잡하다는 것 또한 문제이지만 인가가 제대로 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다 그 시간도 상당히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얼마 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펼쳐진 ‘드론 라이트 쇼’를 꼽을 수 있다. 미국 인텔의 군집제어 기술을 적용한 드론 ‘슈팅스타’로 KT 5G 통신을 적용해 주파수 간섭을 막고 밤하늘에 오륜기를 수놓아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드론 쇼의 기획은 한국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1000여 대에 가까운 드론을 프로그램 하나로 제어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없어 결국 평창 공식 후원사 인텔이 쇼의 주인공이 되었다.
몇 년 전만해도 한국의 드론 경쟁력은 세계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규제라는 이유로 기술 산업 발전의 손발이 묶여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규제가 기술발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대에 사는 지금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