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어렵다, 딱딱하다. 이러한 편견 말고, ‘생각을 키우는 과정’이 수학의 정석이라고 말하는 한서대학교 수학과 이광연 교수를 만났다.
‘적분, 미적분’은 살면서 쓸 데가 없지만, “수학적 사고”는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수학’이 재미있어졌으면 좋겠다
‘수포자’라는 말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수학을 포기한 자’를 말한다. 초, 중, 고교 의무교육 과정에서 ‘수학’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과목이기에 ‘수포자’는 진학의 Grade를 ‘포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길거리에 수많은 ‘수학 전문’ 간판을 내 걸은 학원들이 있고, 그곳으로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입시 중심의 문화가 오히려 수학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요. 아니, 어렵게 느끼게 합니다. 언론에서 수포자라 말하니, 우리 아이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선행학습을 시작했죠. 초등학생이 중, 고등학생 과정을 풀이하는 기이한 과정이 반복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제대로 수학을 알기도 전에 질려버리고 맙니다. 진짜 수학이 어려워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에 압도되어 버리는 거예요.”
이광연 교수는 교과서를 지필하고, EBS 강연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문제를 직면했다. 입시 중심의 체계를 완전히 뒤엎을 수 없다면, 적어도 수학을 알기도 전에 포기하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00년 출간된 <웃기는 수학이지 뭐야>가 그 시작이다.
“생각보다 역사, 문화,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 수학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황금비율’도 수학 개념이죠. <웃기는 수학이지 뭐야>시리즈는 우리 일상생활에 밀접하거나 익히 알고 있는 현상 속에서 수학의 개념을 찾아 설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책이에요. 지금은 이렇게 접근하는 책이 많지만 당시엔 센세이션이었죠.”
첫 책이 호응을 얻으면서, <웃기는 수학자 이광연 교수의 신화 속 수학 이야기>, <수학으로 다시 보는 삼국지>, <시네마 수학>, <미술관에 간 수학자>, <황당하지만 수학입니다> 시리즈 등을 써냈다. 모두 수학의 ‘개념’을 이야기하되 재미있게 접근하고자 했다.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학’이 사회를 더 나아지게 했으면 좋겠다
이광연 교수는 일찍이 역량을 인정받으며 수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20대에 박사학위 취득과 교수 임용 등을 이뤄내며, 보다 깊이 있는 학문의 길을 가고자 했지만 시대의 방향은 그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교과목으로서의 수학이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과는 반대로 순수학문으로서의 수학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단독 전공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고, 융합 또는 실용학문에 병합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4차산업 시대가 도래하고, AI기술이 발전할수록 수학의 역할은 더 커져 가는데, 학술적으로는 힘을 잃어간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수학의 쓸모를 어떻게 하면 증명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외부 강연 무대에도 자주 올랐다. 먼저 수학을 접하는 학생들이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수학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며, 교육과정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방향성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더불어 국가 연구과제에 참여하며, 영역을 확대해나갔다.
“정부에서 국가의 산업 발전의 정도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과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통해서 각 도시의 발전 정도, 중요도 등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제를 제안했어요. 제 전공이 조합적 행렬론인데, 예를 들어서 1980년대 고속도로망과 2020년대 고속도로망을 비교해서 접근성 등을 수치화해, 도시가 발전하는 요인을 분석하는 것이죠. 응용수학의 한 분야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수학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몇 년 뒷면 정년이다 보니 강단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은 이제 한계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수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우리의 삶이,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수학이 일상 속에 스며들면 좋겠다
모든 과학의 근간이 되는 학문임에도 수학이 소위 말해 ‘인기’가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광연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당장 실험의 결과가 나오고, 제품화되는 과학분야와 달리 ‘수학적 연구’는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과학은 발명이 있는데, 수학에서 발견은 발명이라고 이름붙이지 않아요. 말 그대로 발견이라고 하죠. 그 이유는 수학은 자연에 있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미 자연에 있던 것을 패턴이나 규칙 등을 수학으로 검증하는 것이기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이 아니라는 거죠. 같은 이유에서 특허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과론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는 치명적 단점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수학적 법칙이 언제 어떤 신기술을 발견하는 초석으로 활용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자연의 현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 그 발견들이 쌓이고 쌓여 과학기술 발전의 양분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학문의 성장은 궁금증을 갈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러려면 사회 내에서 일상화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수학적 사고가 생활 속에 스며들어가는 것이지요. 수학적 사고는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 풀이의 결과가 아닌,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확장하고 구체화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최근에 모여서 수학문제집을 풀어보는 동호회도 생기고, 치매예방을 위해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수학이 취미가 되기도 하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이 되는 사회. 이광연 교수가 바라는 세상이다.
“이번에 <개념 있는 수학자> 2권을 출간했는데요, 앞으로도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꾸준히 써나갈 계획입니다. 예전에 출간한 책들을 선별해 만화화할 계획도 갖고 있고요. 그리고 강연, 유튜브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즐겁게 수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