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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하기 위해,
새로운 시험 방법을 마련하다

의료기기평가센터 윤주신 센터장, 박성용 수석연구원, 유준호 선임연구원

중입자 치료기는 탄소이온을 가속시켜 높은 에너지를 갖도록 한 후, 암 조직에 이를 조사하여 치료 부위만을 죽이는 방사선 치료기기다. 이는 현존하는 의료기기 중 가장 최첨단 암 치료기로, 최근 국내에 처음 도입되었다. 중입자 치료기가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KTL 의료기기평가센터는 시험을 통해 의료기기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곳으로서, 국내에 없던 중입차 치료기의 시험 방법을 마련하는 것에 도전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중입자 치료기는 국내에 도입될 수 있었고, 지난 4월 처음으로 가동되어 현재 많은 암 환자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중입자 치료기의 시험 방법을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시험 방법을 구성했는지 궁금합니다.

박성용 수석연구원   의료기기법에 의해 의료기기를 국내에서 제조하거나 수입·판매하려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자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사하고, 이것이 기준에 적합하면 판매를 허가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는 제품의 성능을 검사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품이 규정을 충족한다는 것’을 제3자가 시험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이에 KTL은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관련된 시험을 수행하고 성적서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료기기 제조사들은 IEC 60601-1(ed 3.1)이라는 국제표준에 따라 요구되는 안전사항을 반영해 제품을 설계·제작해야 합니다. 또한 시험을 통해 제품이 최소한의 안전성을 갖추었음을 입증해야 하죠. 식약처에서도 해당 국제규격을 ‘전기·기계적안전에 관한 공통기준규격’이라는 명칭으로 고시하고 있습니다. 이것 외에 별도로 적용되는 보조규격, 개별규격은 의료기기의 기술과 역할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중입자 치료기의 시험도 IEC 60601-1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에 중입자 치료기만의 특성을 시험할 수 있는 IEC 60601-1-2(전자파안전에 관한 규격), IEC 60601-1-3(방사선 차폐에 대한 규격), X-ray 진단 장치와 관련된 시험도 진행되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실 때 가장 집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윤주신 센터장   의료기기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비교적 단순한 의료기기부터 중입자 치료기와 같이 대단히 복잡한 의료기기까지 범위가 넓죠. 이 다양성 때문에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험을 수행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번 중입자 치료기도 마찬가지였죠.

그럴 때마다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목적(Intended use)에 집중합니다. 제조자가 제품을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어디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설계한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제품과 관련된 국제규격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적용할지, 기기의 성능을 시험하는 방법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제조사인 일본 도시바(TOSHIBA) 엔지니어들과 소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습니다. 회의를 통해 국제규격의 요구사항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기기를 설계하고 제작했는지 논의했습니다.

일례로 중입자 치료기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 위해 일본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며칠 동안 절연 다이어그램을 가지고 강도 높은 논의를 했습니다. 기기의 전원 계통도는 어떻게 되고, 절연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등등의 전기적인 구조를 따지는 것입니다. 절연 다이어그램과 실제 제품에는 차이가 있고 기기 자체가 건물 한 채만 한 크기라 열심히 기록하며 제품을 상세히 분석했습니다. 몇 날 며칠 우리가 충족시켜야 하는 규격 한절 한절 대조하며 규격의 요구사항과 제품을 확인하기 위해 모두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


(왼쪽) 환자가 눕는 치료대 시험하는 장면, (중앙) 시험 전 중입자 치료기 조정실 구역의 확인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 (오른쪽) KTL-DK메디칼솔루션-도시바 관련자 간 시험 관련 회의하는 장면

중입자 치료기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이를 통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나요?

박성용 수석연구원   일본에서는 이미 중입자 치료기로 암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치료기는 일본 정부(후생성)의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은 상태죠. 그런데 현재 일본에 존재하는 중입자 치료기는 기존 규격(IEC 60601-1 2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기기를 제조한 일본에서조차 중입자 치료기에 최신 규격(IEC 60601-1 3.1판)을 적용해 본 적이 없는 것이죠.

물론 우리 센터와 협력한 도시바는 제조사입니다. 기기를 설계하고 설치하는 데에는 전문가죠. 그러나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데 문제가 없으려면, 그들도 기기 제조와 관련된 법안·규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규격만 알고 있던 도시바에게 새로운 규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죠.

이런 과정을 통해 도시바에게도 수차례 엔지니어링 역량을 인정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이 경제 선진국인 만큼, 엔지니어링 수준도 일본이 한 수위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기기 국제규격에 대한 철학과 이해도 면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도시바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해외 유수기업들과 견줄만한 역량을 갖추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요코하마 도시바 방문 현장

덕분에 ‘꿈의 치료기’라고 불리는 중입자 치료기가 국내에 도입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이뤄낸 결과라, 이번 과제를 수행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윤주신 센터장   어떤 의료기기에 대한 상담을 할 때, 의료기기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알맞은 규격을 고려하는 것부터가 시험의 시작입니다. 이를 위해 상담 초기부터 박성용 수석연구원, 김민우 선임연구원, 유준호 선임연구원과 중입자 치료기의 시험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또한 팀원이 변경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끝까지 합심하여 프로젝트를 완수하려고 노력했는데요. 그 결과 최초 멤버 그대로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고, 돌아보니 이들 덕분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운 마음입니다.

박성용 수석연구원   IEC 60601-1이라는 국제규격이 있지만, 의료기기와 규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중입자 치료기와 같은 복잡한 의료기기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시험 엔지니어링(Testing Engineering)이라고 칭하는데요. 의료기기와 규격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만큼, 시험 엔지니어링 수준이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수준 높은 시험 엔지니어링을 위해서는 ‘제조사와의 협력’이 필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센터는 DK메디칼솔루션뿐만 아니라 도시바와도 긴밀한 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일정에 맞추어 시험성적서를 발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수입사인 DK메디칼솔루션에서 도시바와 KTL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주셨죠.

특히 DK메디칼솔루션을 통해 도시바 측에 시험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할 때가 많았는데요. 이때 의사소통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전혀 다른 자료가 오가는 등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데, DK메디칼솔루션 측에서 전부 문제없이 작업해 주셨습니다. 공식 회의록만 48차에 달할 만큼 협업 과정이 매우 긴밀하게 이뤄졌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KTL을 믿어주시고 도와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유준호 선임연구원   식약처 허가까지 나온 후, 우연히 연세의료원이 발표한 중입자 치료기 홍보영상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해당 영상에 많은 덧글이 있었습니다. “암 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었는데, 고통 없이 치료가 된다니 빨리 받아보고 싶다.”, “1~2억씩 들여 해외로 원정 치료 가던 것을 한국에서 받게 된다니 정말 좋다.”, “암으로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이 치료를 받아보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말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각자의 사연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으로 ‘의료기기 시험 업무’에 대해 깊은 보람과 사명감이 동시에 느껴지더군요. 앞으로 이와 같은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면, 제가 느꼈던 감정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윤주신 센터장   의료기기와 일반 가전제품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의료기기는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죠. 어떤 위험을 마주쳤을 때, 환자는 저하된 신체 능력이나 지각력 때문에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기기 국제규격은 이중의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반 가전제품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확보하도록 요구하고 있죠. 이러한 규격 요구사항을 제품이 잘 이행했는지 제3자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KTL 의료기기평가센터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기기시험검사는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비타민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주 에너지원은 아니지만, 하나라도 결핍된다면 몸 전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내 산업에서 의료기기 시험 시장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의료기기 시험검사는 국민의 안전·건강·복지에 연결되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KTL, DK메디칼솔루션, 도시바 직원들과 이렇게 장기간 긴밀한 협력을 이룰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중입자 치료기에 대해 최신 규격을 적용해서 시험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막막했죠. 이렇듯 중입자 치료기 시험은 우리 센터에 새로운 도전이었고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만, 시험을 마친 뒤 되돌아보니 이 과정을 통해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번 경험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의료기기에 대한 시험검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이렇게 고객이 필요로 하는 시험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문의
의료기기평가센터 윤주신 센터장, jsyoun@ktl.re.kr